1998. 4. 16.


정보 데이터베이스 편찬을 위한 과제


김    현

서울시스템주식회사

한국학데이터베이스연구소장


  데이터베이스에 대해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관심이 모여지게 된 것은 ‘전자 통신’이라고 하는 새로운 정보 유통 매체가 우리 사회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데 기인한다.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는 “특정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필요한 다양한 데이터들을 상호 연관성 있게 수록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데이터베이스는 단순히 ‘특정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데이터의 집합에 그치지 않는다. “한 사회가 필요로 다양한 종류의 지식과 정보가 전자적 매체를 통해 유통될 수 있도록 그것을 디지털 형태로 편찬한(compile) 것.” 그것이 오늘날의 데이터베이스의 확대된 의미이다.

  기성세대들은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염려하지만, 그들이 TV와 같은 영상 매체, 컴퓨터와 같은 전자 통신 매체에 매달려 소비하는 시간은 과거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책을 읽지 않는 젊은이들이 머리 속에는 오로지 책과 더불어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 기성 세대들보다도 오히려 더 다양하고 잡다한 지식과 정보가 넘치고 있다. 젊은이들은 그들의 정보 매체에서 지식을 얻고, 그 토대 위에서 판단하고 살아갈 것이다. 우리 사회의 다음 세대들에게 전달해야 할 유용한 지식이 전자화 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지식은 유통 수단을 잃어 곧 사장되어 버리고 만다. 지식의 전자화로서의 데이터베이스 편찬에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는 한 가지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식 매체의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은 단지 젊은 세대들의 취향만은 아니다.  유용한 지식의 보급을 추진하는 정부의 국민 교육 정책은 정보의 디지털화라는 길로 불가피하게 방향지워져 있다. 국제 경쟁의 시대에서는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 할지라도, 소규모의 영농가라 할지라도 품질 향상, 생산성 향상의 당무를 외면한 채 생존하기가 어렵다. 정보화 시대에 이 나라의 정부가 마련해야 할 국가 생존 전략은 국민의 실질적인 지식 수준을 끊임없이 향상시키는 것이다.  공공도서관의 건립은 선진국들이 지금까지 그와 같은 목적에서 수행해온 국민교육 정책의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기존에 간행된 도서의 구매․보급만으로는 급증하는 지식의 수요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가 없게 되었다. 곳곳마다 건물을 세우고, 양질의 사서를 양성하여 파견하는 데 드는 비용도 문제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정보 통신이라고 하는 것이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정보 통신의 세계에서는 일체의 공간적 거리 개념이 무시된다. 현실 세계에서는 마을마다 도서관이 있어야 하지만, 정보 통신 세계에서는 지구상의 한 곳에 위치한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각 지역의 모든 사람이 똑같은 능률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뉴미디어를 선호하는 젊은이들의 취향이 디지털화의 현실이라고 한다면,  국민 교육 네트워크의 구축은 자국민을 생존과 번영에 대한 책임이 있는 정부 당국이 짊어져야 할 디지털화의 당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한다면, 우리가 데이터베이스라고 하는 이름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가 명확해진다.  우리 사회에서 공유되어야 할 모든 지식이 정보 통신망이라고 하는 새로운 지식 매체에 담길 수 있도록 그것을 디지털 형태로 편찬하는 일이다. 뉴미디어 상에서 운영될 정보가 그처럼 포괄적이고 다양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편찬, 즉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일이 전산 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일로 제한될 수 없다. 건축, 제약, 축산, 예술, 인문과학, 사회교육 등 각 분야의 전문 조직과 인력들의 손에 의해서 그 분야 정보의 편찬 작업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범사회적 정보 매체로서의 데이터베이스는 두 가지 커다란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 첫번째는 지식과 정보를 전자적인 형태로 간행할 수 있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육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터베이스의 간행은 그것에 담길 내용에 대한 명확한 지식을 갖춘 위에 그것이 운영될 전자 네트워크와 컴퓨터 시스템의 환경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기술력을 구비한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한 인력은 컴퓨터의 기술적인 면에만 주목하는 컴퓨터 기술자들이 아니다. 인문과학이든 예술이든 교육이든, 그 분야의 전문 지식을 배우는 것과 그 지식을 전자적인 형태로 편찬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러한 학제적(interdisciplinary) 소양을 가진 데이터베이스 편찬자를 양성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범사회적 지식 매체로서의 데이터베이스 개발이 당면해 있는 두 번째 문제에 대한 해답이 첫번째 문제의 해결을 위한 모색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표준화의 문제이다. 표준화라고 하는 것은 잡다한 것이 유통되는 데서 오는 혼란과 낭비를 막기 위해서 제품간의 상호 호환성을 보장하는 일정한 규격을 제정하는 것을 말한다. 데이터베이스 분야에서의 표준화란 무엇을 말하는가? 기술적인 면에서는 그 안에서도 수백 가지의 표준이 언급될 수 있겠지만, 필자가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컴퓨터 분야의 비전문가이지만 각기 자신의 전문 영역이 있는 사람들, 그러면서 자신의 전문 지식이 데이터베이스화되는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야 할 표준이다. 바로 지식의 내용물이 전자적 매체에 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편찬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약속을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의 많은 도서관은 목록 카드 대신 전자화된 도서 검색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한 서지 데이터의 전자화는 도서관의 전산 직원에 의해 자의적으로 수행되는 것이 아니다. 서지 데이터의 전자화를 위한 표준 규격이 제정되어 있어서, 그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필자가 말하는 표준은 바로 이러한 유의 표준이다.  예술, 의학, 기술, 그 밖의 인문사회과학 각분야의 전문지식들이 전자 정보화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제각각 다른 형식에 담기기를  요구하는 그 지식들을 어떻게 전자적으로 편찬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이 필요한 것이다.

  ‘표준’의 역할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불필요한 낭비의 방지라고 할 수 있다. 전자화된 정보에 국가적, 내지는 국제적 호환성을 부여하여 이중삼중의 노력이 낭비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정보의 활용면에서의 능률보다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교육과 훈련에 있어서의 능률이다. 정보화 사업에서 표준을 정하는 것은 학교 교육에서 교육 목표와 교과 과정을 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전자화 되어야 할 각종 지식의 종사자들, 이른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기가 다루는 지식의 정보화를 위해 내딛어야 할 첫 걸음은 컴퓨터 기술 분야의 전문가들과 숙의하여 내용의 전문성과 활용의 보편성을 함께 고려한 정보의 편찬 지침을 마련하고, 그것을 그 분야의 표준으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그러한 일은 다른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식의 전자화에 대한 여러가지 지침과 표준이 만들어지게 되면, 다른 연구자나 학생들 가운데 자기가 배운 전문 지식을 정보화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그 표준이 주는 가이드라인에 따라 자기 일의 목표를 정할 수 있게 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가는 컴퓨터에 대한 기술적인 지식은 그들 스스로 과외의 노력으로 터득하거나 컴퓨터 전문가와 협업을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의 내용이 어떠한 방식으로 정보화 되어야 할 지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세울 수 있으면, 기술적인 도움은 기술자들에게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기준이 서 있지 못할 경우에는 어떤 천재적인 컴퓨터 엔지니어도 별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10여 년 간 우리의 전통시대에 만들어진 기록 문화의 유산들이 정보화 시대의 교육과 문화 현장에서 재활용될 수 있도록, 그것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방법을 모색해 왔다. 그것은 바로 필자 자신이 고전 텍스트를 테마로 하는 전통 문화의 연구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컴퓨터에 대한 지식과 기술은 그 기본적인 입장의 토대 위에서 방법적으로 추구된 것이었다. 이제는 그러한 모색이 소수의 개인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의 사회적 공효에 관심을 갖는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함께 추구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유형별 데이터베이스 편찬의 표준 규약을 제정하는 일은 전문 정보 데이터베이스 개발의 기술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정보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정보화 교육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